- 서울마라톤 = 동아마라톤. 1931년 동아일보 후원으로 출발해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마라톤(보스턴 다음으로 손꼽히는 역사)입니다. 첫 코스는 풀코스가 아닌 서울~영등포 23.2km 왕복이었죠.
- 이 대회는 손기정과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한국 근현대사와 직접 얽혀 있습니다. 1936년 동아일보가 손기정 사진의 일장기를 지웠다가 무기정간을 당했고, 그 여파로 1937년 대회가 멈췄습니다.
- 2019년 World Athletics 헤리티지 플라크(아시아 최초)와 플래티넘 라벨(세계 7번째)을 같은 해에 거머쥐었고, 공식 계정은 2030년을 제100회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잠실까지, 100년의 길입니다.
2030 제100회를 앞두고, 서울마라톤의 100년을 되짚습니다
서울마라톤 공식 계정이 최근 "2030 제100회 서울마라톤 동마칩 안내"를 올리며 100회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습니다. 매년 3월, 광화문에서 잠실까지 3만 명이 달리는 이 대회가 어떻게 1931년 영등포의 흙길에서 시작됐는지, 왜 한국인에게 단순한 레이스 이상의 의미인지 — 확정된 역사적 사실 위주로 정리했습니다. (글감: @dongmaclub "응답하라 서울마라톤", @seoul_marathon 2030 제100회 안내, 2026-06)
1931년 — 영등포로 달려간 첫 출발
서울마라톤의 첫 회는 1931년 3월 21일에 열렸습니다. 지금처럼 42.195km 풀코스가 아니라,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을 출발해 남대문·한강인도교를 지나 영등포역까지 왕복하는 약 23.2km 코스였죠. 고려육상경기회가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했는데,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달리기로 민족의 기개를 세우자"는 뜻이 담긴 대회였습니다.
역사로 보면 이 대회는 만만치 않습니다. 1897년 시작된 보스턴마라톤 다음으로 손에 꼽히는 오래된 마라톤이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오래된 마라톤으로 통합니다. 우리가 매년 봄 무심코 보는 "서울마라톤"이 사실은 95년 넘게 이어져 온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뜻입니다.
손기정, 그리고 대회를 멈춘 일장기 말소사건
서울마라톤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손기정입니다. 그는 1932년 제2회 대회에 20세 신예로 출전했는데, 서울 지리에 어두워 삼각지 로터리에서 길을 잃는 바람에 2위에 그쳤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출전이 계기가 되어 마라톤 명문 양정고보에 진학했고, 결국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2시간 29분 19초, 올림픽 신기록)이라는 세계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길을 잃어 올림픽 챔피언이 된 사나이"인 셈이죠.
대회를 멈춘 사건 — 1936년 일장기 말소
일제 치하의 손기정은 일장기를 달고 'Son Kitei'라는 일본명으로 뛰어야 했습니다. 1936년 8월, 동아일보가 손기정 우승 보도 사진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게재했고, 조선총독부는 신문 발매를 중단시키고 관련자를 연행한 뒤 동아일보에 무기정간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 여파로 1937년 동아마라톤 대회가 중단됐죠. 스포츠 대회가 항일 언론 탄압의 결과로 멈춘,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입니다.
14년의 공백, 그리고 보스턴 챔피언들이 일군 부활
일장기 말소사건과 전시 체제 속에서 대회는 1940년 제11회를 끝으로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이후 14년의 긴 공백이 이어졌죠. 그 사이 한국 마라톤의 불씨는 해외에서 타올랐습니다. 1947년 서윤복이 보스턴마라톤에서 2시간 25분 39초의 당시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했고, 1950년 함기용이 다시 보스턴을 제패하며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이 두 보스턴 챔피언을 기념하는 의미를 안고, 동아마라톤은 1954년에 부활합니다. 끊겼던 길이 다시 이어진 거죠. 이후 1964년 제35회부터 국제 기준 풀코스 42.195km를 도입하고 '동아마라톤대회'라는 이름을 공식화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풀코스 대회의 틀을 갖췄습니다.
이름의 변천 — 동아에서 서울마라톤까지
| 시기 | 명칭 / 사건 |
|---|---|
| 1931~1939 | 서울~영등포 마라톤대회 (고려육상경기회 주최, 동아일보 후원, 23.2km) |
| 1937 | 일장기 말소사건 여파로 대회 중단 |
| 1940 | 제11회를 끝으로 중단 → 14년 공백 |
| 1954 | 대회 부활 (서윤복·함기용 보스턴 우승 기념) |
| 1964 | 제35회부터 '동아마라톤' 공식 개칭 + 풀코스 42.195km 도입 |
| 1980~90년대 | '서울국제마라톤' 병기. 1992 춘천·1993~99 경주로 개최지 이동 |
| 2000 | 서울 복귀 — 광화문 출발 ~ 잠실올림픽주경기장 현재 코스 확정 |
| 현재 | '서울마라톤'(영문 Seoul Marathon) + 동아마라톤 회차 병행 표기 |
흥미로운 건 1990년대의 '유랑 시대'입니다. 1992년엔 춘천, 1993~1999년엔 경주로 개최지가 옮겨 다녔죠. 그러다 2000년 서울로 복귀하면서 지금의 광화문~잠실 코스가 확정됐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도심과 한강변을 지나 잠실 주경기장 트랙으로 골인하는, 비교적 평탄해 기록이 잘 나오는 코스입니다.
2007년 이봉주, 그리고 World Athletics 더블 크라운
국내 개최 레이스에서 한국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는 2007년, 37세의 이봉주가 2시간 8분 4초로 우승한 장면입니다. 이는 국내에서 열린 대회 기준 한국인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1964년 이후 수립된 한국 남자 마라톤 역대 기록의 상당수가 이 동아·서울국제마라톤 무대에서 나왔다는 점도, 이 대회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2019년 — 한 해에 두 개의 왕관
2019년 서울마라톤은 세계 무대에서 두 번 인정받았습니다. 5월 World Athletics 헤리티지 플라크(보스턴·아테네에 이은 세계 3번째, 아시아 최초)에 지정됐고, 11월엔 도로 레이스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라벨(당시 전 세계 7번째)을 획득했습니다. "역사"와 "현재의 수준"을 동시에 공인받은 셈이죠.
2026년 제96회 대회에서는 에티오피아의 Haftu Teklu가 2시간 4분 23초의 코스 신기록으로 우승했고, 4위까지 모두 직전 코스기록을 넘어서는 역대급 레이스가 펼쳐졌습니다. 95년 전 영등포 흙길의 23.2km가, 이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2시간 4분대로 질주하는 무대가 된 것입니다.
2030, 제100회를 향하여
서울마라톤 공식 계정은 2030년을 '제100회'로 안내하며 동마칩(기록 측정 칩)과 ROAD TO 100TH 프로젝트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31년 제1회부터 회차로 세면 2030년이 제100회에 해당합니다. 중단과 공백, 개최지 이동을 모두 견디고 한 세기를 채우는 마라톤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서울마라톤은 그냥 "봄에 열리는 큰 대회"가 아닙니다. 손기정의 길이고, 서윤복·함기용·이봉주로 이어진 한국 마라톤의 뿌리이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의 증인이기도 합니다. 2030년 제100회의 출발선에 서는 러너라면, 자신이 100년의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도 좋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을 시즌부터 대회를 준비한다면 월별 마라톤 일정 페이지에서 하반기 대회를 확인하고, 첫 풀코스라면 거리별 난이도 가이드와 기록칩·넷타임 정리를 함께 보면 도움이 됩니다.
※ 본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서울시 공식 자료 등을 교차검증해 작성했습니다. 일부 초기 명칭·방송사 교체 연도는 출처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30년 제100회'는 1931년 창설을 제1회로 보는 회차 기준이며, 공식 계정 안내에 근거합니다.



